[한국] 1976 서울 UFO 조우 괴담
1976년 10월 14일 오후 6시에서 8시 사이, 서울특별시 강북 일대에서 미확인비행물체(UFO) 근접 조우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비행물체가 청와대 상공에 진입했기 때문에 '청와대 UFO 사건'으로도 불린다. 대한민국 국군이 비행물체 격추를 시도했으나 실패한 사례로, 로스앤젤레스 전투와 같이 UFO 근접 조우에 무력을 사용한 사례로 남아 있다.
사건 경과
10월 14일 저녁, 시민들은 서울 상공에 떠 있는 십여 개의 괴비행체를 발견했다. 이 비행체들은 밝은 빛을 내며 반원형 대열을 맞추어 천천히 남하하고 있었다. 당시 MBC 라디오 <젊음을 가득히>를 진행하던 이수만이 실시간으로 제보를 받고 라디오를 통해 이 사실을 알렸다는 증언이 있으나, 자료 손실로 정확한 사실 확인이 어렵다. 비행물체는 약 1~2시간 동안 서울 상공에 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7시 30분 경, 서울 상공 P-73C 구역에 진입한 미확인 비행물체들에 대해 대한민국 국군은 즉각 경고 방송을 실시하며 비상 대응 태세에 들어갔다. 당시 서울시 P-73 구역을 비행하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으나, 해당 비행체들은 예고 없이 등장했다.
비행체들이 P-73B 구역 2NM(3.704km) 앞까지 접근하자, 수도경비사령부 소속 제1방공여단에서 최초 경고 사격을 실시했다. 비행체들이 P-73B 구역을 침범하고 청와대 인접 구역인 P-73A 구역으로 향하자, 공군 제15특수임무비행단에서는 F-5A, F-5E 전투기를 비상 출격시켰다. 18시 15분 즈음, KM167A3 20mm 발칸포로 추정되는 대공포가 최초로 발사되었고, 시민들은 주황색 예광탄이 하늘을 가르는 광경을 목격했다.
비행체는 낮은 속도로 저고도 비행 중이었음에도 격추되지 않았고, 대열을 유지하며 계속해서 밝은 조명을 비추고 있었다. 18시 20분 경, 첫 번째 격추 시도가 끝났고, 18시 37분 경 다시 P-73A 방향으로 이동하자 두 번째 격추 시도가 이어졌으나, 비행체는 북서쪽으로 물러났다. 이 과정에서 대공포의 도비탄에 시민 1명이 사망하고 31명이 다쳤다.
원인 및 분석
당시 박정희 정부는 북한과 강경한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판문점 도끼만행사건과 소련 조종사의 망명 사건 등으로 동북아의 긴장이 고조된 상태였다. 미확인 비행체가 진짜 UFO인지 노스웨스트항공 민항기인지는 알 수 없으나, 노스웨스트 항공이 P-73B를 침범할 뻔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미 의회 기밀해제 자료에 따르면, 서울 출항관제는 P-73C를 비행 중이던 노스웨스트 항공기를 잘못 유도했고, 항공기는 정상 항로로 복귀했다. 그러나 국방부의 대응 자료와 비교할 때 대응 시간에 차이가 나타나며, 군에서 대응한 UFO와 노스웨스트 항공기는 다른 기체인 것으로 추정된다.
사건 이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는 보잉 707의 항로 이탈로 보고되었으며, 국방부와 교통부는 노스웨스트 항공의 보잉 707 화물 전세기가 청와대 상공의 비행금지구역으로 잘못 들어와 위협 사격을 가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시민들의 목격담에 따르면 보잉 707은 아니었다고 한다.
2020년,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이 사건을 다루며 정부의 은폐 문제를 지적했다. 2023년에는 데이비드 그러쉬의 UFO 내부 고발 이후, 스티븐 그리어의 증언으로 인해 해외에서 다시 조명되었다. 그는 서울 외곽에 비행접시를 숨기기 위한 비밀시설이 있으며, 이는 서울 UFO 격추미수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