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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건] 아이린모어 등대지기 실종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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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0년 영국 스코틀랜드 북부의 플래넌 제도(Flannan Isles) 아이린모어(Eilean Mòr) 섬에서 등대지기 3명이 실종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메리 셀러스트호 실종과 함께 바다에서 벌어진 대표적인 미스터리로 꼽힌다. 1. 사건 개요 스코틀랜드 북부의 아이린모어 섬은 해상 사고가 잦은 북해에서 선박의 안전을 위해 등대가 설치된 곳이다. 이 등대는 예정보다 2년 늦은 1899년 12월에 완공되었으며, 토마스 마셜, 제임스 다켓, 도날드 맥아더 세 명의 등대지기가 근무하고 있었다. 1900년 12월 15일, 등대 불빛이 꺼져 있는 것을 발견한 배들이 이를 신고하였다. 그러나 폭풍우로 인해 열흘 뒤인 12월 26일이 되어서야 조사대가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섬에는 아무도 없었고 등대는 정돈되어 있었으며, 등대의 일지는 12월 15일까지 기록된 상태였다. 2. 실종 원인에 대한 추정 등대 주변 조사 결과, 섬의 서쪽 상륙지역이 심하게 파괴되어 있었고, 철제 구조물과 바위가 밀려 들어온 흔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날 날씨는 평온했으며, 등대에는 세 벌 중 두 벌의 방수복만 사라져 있었다. 등대지기 3명 중 1명은 반드시 등대에 남아야 한다는 규정을 고려하면 이상한 점이 많았다. 이러한 이유로 유령, 바다 괴물, 외국 스파이 등의 괴기스러운 가설들이 제기되었으나 증거는 없었다. 가장 유력한 원인은 '이안류'와 같은 갑작스러운 파도였다. 섬의 지형상 동굴과 협곡이 많아 폭풍이 없더라도 거센 파도가 들이칠 수 있는 구조였고, 그로 인해 3명이 휩쓸려 실종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3. 사건 이후 이 사건은 닥터 후의 에피소드, 오페라 <등대>, 영화 <키퍼스> 등 다양한 작품에서 다뤄졌다. 이후에도 등대는 운영되었으나 1971년 자동화되면서 무인 등대가 되었다.

[세계사건] 챌린저 우주왕복선 폭발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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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챌린저 우주왕복선 폭발 사고는 1986년 1월 28일, 미국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의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NASA의 우주왕복선 개발 이래 25번째 임무였던 STS-51-L 미션은 우주 통신망 확충과 원격 교육, 핼리 혜성 관측 등 다채로운 목표를 가진 야심 찬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발사 후 불과 73초 만에 폭발하며 승무원 7명 전원이 사망하는 대참사로 끝났다. 사고의 배경 이 임무는 NASA가 추진한 '우주 교사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민간인 교사 크리스타 매콜리프가 우주에서 과학 실험을 통해 원격 수업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1985년부터 준비된 이 프로젝트는 12,000여 명의 교사 지원자 중 매콜리프를 선발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동시에, 핼리 혜성 관측이라는 천문학적 기회를 잡기 위해 NASA는 일정에 큰 압박을 받았다. 그러나 발사 일정은 여러 차례 지연되었다. 초기 계획은 1월 22일이었으나, 이전 임무의 지연, 기상 문제, 발사 준비 과정의 기술적 문제로 인해 발사는 1월 28일로 미뤄졌다. 발사 당일, 기온은 평년보다 크게 낮은 영하 1.1℃였으며, 이로 인해 사고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 로켓 부스터의 O-Ring이 탄성을 잃는 문제가 발생했다. 사고의 전개 발사 후 약 59초, 우측 로켓 부스터의 이음매에서 불꽃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이는 외부 연료탱크의 손상을 초래하며 결국 폭발로 이어졌다. 폭발은 73초 지점에서 발생했으며, 이로 인해 왕복선은 공중에서 산산조각났다. 충격적으로, 승무원들은 폭발 직후에도 살아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비상용 호흡 장치 7개 중 3개가 활성화된 채 발견되었으며, 최종적으로 승무원들은 고속으로 바다에 추락하며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의 영향 챌린저 사고는 NASA의 우주왕복선 프로그램과 우주 탐사 계획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우주왕복선 발사는 사고 이후 2년 8개월간 중단되었고, 안전성 강화와 설계 개선을 위한 전면적인 점검이 이루어졌다. 사고 조사 과정...

[세계사건] 맨 힐 섬의 사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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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 10월, 미국 북동부 매사추세츠 해안에서 떠밀려 온 의문의 사체는 당시 큰 관심을 모았다. 발견 당시 사체는 이미 부패가 진행 중이었고, 그 크기는 놀라울 정도로 컸다. 몸길이는 6미터에 달했으며, 무게는 2톤에 이른다. 이 사체의 외형은 마치 장경룡과 유사한 형태로 묘사되었으며, 일부 증언에서는 다리가 잘린 낙타의 모습 같다고도 전해졌다. 무엇보다도, 이 사체의 가장 특이한 점은 작은 머리와 긴 목에 두 개의 커다란 지느러미처럼 보이는 기관들이 달려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사체는 심하게 부패해 형태가 불분명했고, 그로 인해 사람들은 이를 해석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어떤 이들은 이를 장경룡의 사체나 고대 해양 생물의 시체로 해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체의 부패 상태를 고려하면, 이런 해석은 과학적인 근거보다는 단순히 믿음에 의한 추측일 가능성이 크다. 결국, 가장 널리 받아들여진 설명은 이 사체가 심하게 부패한 돌묵상어의 시체라는 주장이다. 이 사건과 유사한 경우로는 일본에서 발견된 ‘즈이요마루’ 사건이 있다. 즈이요마루는 1950년대에 일본 근해에서 발견된 거대한 해양 생물의 시체로, 당시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미스터리한 생물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다. 이 역시 해석이 분분했으나, 과학적인 분석 결과는 여전히 그 실체를 밝혀내지 못했다.

[세계사건] 불가리아 야당 대표 가스총 테러 미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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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월 19일,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발생한 "불가리아 야당 대표 가스총 테러 미수 사건"은 당시 불가리아 야당이었던 권리자유운동의 의장 아흐메드 도간을 겨냥한 시도였다. 사건은 도간이 소피아에서 연설을 하던 중, 한 청년이 무대 위로 난입해 호신용 가스총을 도간의 머리에 겨누며 시작되었다. 그러나 총알은 발사되지 않았고, 이를 기회로 도간은 기민하게 대처하며 상황을 역전시켰다. 두 사람은 그 짧은 순간에 눈빛을 교환했지만, 결국 범인은 제압되었고 회장에서 끌려나갔다. 이 장면은 유튜브에서 한동안 움짤로 유행하기도 했다. 범인 옥타이 에니메흐메도프는 당시 25세의 튀르크 출신 청년으로, 불가리아의 흑해 인근 부르가스에서 왔다. 그는 ‘나는 도간을 증오한다’라는 반야당 단체의 일원으로, 마약 소지와 절도, 폭행 등 범죄 전력이 있었다. 그가 사용한 가스총은 호신용으로, 탄약이 들어있지 않았고, 두 번의 방아쇠 당김에도 불발됐다. 전문가들은 이 총이 발사되었더라도 도간에게 치명적인 위협을 가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에니메흐메도프는 2014년 2월, 3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이후 항소심에서 2년간의 가택연금으로 감형되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암살 시도가 아니라, 그 이면에 여러 의혹을 남기게 되었다. 많은 불가리아인들은 도간 전 의장이 자작극으로 이 사건을 벌였다고 믿고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불가리아 정치에서 종종 동정표를 얻기 위해 정치인들이 테러나 암살 시도를 연출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범인이 징역형을 받았음에도 그 처벌이 지나치게 가볍다는 점이다. 세 번째 이유는 에니메흐메도프가 과거 권리자유운동의 청년당원으로 활동했으며, 사건 당시 당원증을 제시해 아무런 제지 없이 회장에 입장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도간 전 의장이 사건을 꾸몄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사건 이후 도간 전 의장은 의장직을 사임했으나 여전히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특히, 사건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

[세계사건] 사막에 묻힌 E.T 카트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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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는 1982년 영화 E.T. the Extra-Terrestrial 을 기반으로 아타리 2600용으로 개발된 게임이다. 이 게임은 영화의 인기와 상관없이 비디오 게임 역사에서 '최악의 게임'으로 손꼽히며, 아타리 쇼크의 주요 원인으로 여겨졌다. 아타리 쇼크는 이 게임이 비디오 게임 업계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으로, 당시 아타리의 대규모 재고 처리 문제와 함께 업계의 큰 위기를 일으켰다. 게임은 E.T.가 다양한 지역을 돌아다니며 통신기 부품을 모아 외계인 우주선으로 돌아가는 어드벤처 퍼즐 형태이다. 비록 게임 자체는 제작 기간이 매우 촉박한 상황에서 완성된 것이었기 때문에 평가가 엇갈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친절하고 직관적이지 않은 게임플레이, 그리고 반복적인 요소들로 인해 사용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 게임의 진짜 전설은 출시 이후 반품된 카트리지들에 관한 이야기로, 대량의 재고 게임 카트리지가 뉴멕시코 앨러모고도 사막에 묻혔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타리는 처음에는 이를 부인했지만, 30년이 지난 후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발굴 작업을 진행해 실제로 묻혔던 카트리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게임 역사에서 상징적인 전설로 자리잡았고, 발굴된 카트리지는 경매에 나와 일부는 1500달러에 거래되기도 했다.

[세계사건] 맥스 헤드룸 전파납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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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11월 22일, 시카고의 하늘이 저물고 깊은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 사람들은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 밤은 그 누구도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뒤흔들리게 된다. 그날, 두 차례에 걸쳐 방송국의 전파가 사라지고, 화면 속에는 신원불명의 괴인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수많은 미스터리를 남긴 채,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첫 번째 사건은 오후 9시경, 시카고의 WGN-TV 스포츠 뉴스 방송 중에 발생했다. 앵커 댄 로언이 평소처럼 스포츠 소식을 전하고 있을 때, 갑자기 화면이 흔들리며 이상한 인물이 나타났다. 그 인물은 "맥스 헤드룸"이라 불리는 기괴한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그가 등장한 배경은 고요하고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의 말은 불분명하고 무작위적인 행동은 그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한참 동안 그는 화면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가 말하는 내용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어지러운 말들이었다. "헬로, 헬로! 내가 당신을 안다고 생각해?"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웃음을 터뜨렸고, 화면은 다시 불명확하게 끊어졌다. 20초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그 소름 끼치는 장면은 종료되었고, 당시 방송국의 엔지니어들은 급히 그 장면을 차단했다. 하지만 앵커는 그저 눈을 크게 뜨며 말할 뿐이었다. "저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군요." 그러나 사건은 그칠 줄 몰랐다. 바로 2시간 후, 다시 한 번 전파납치가 발생했다. 이번에는 WTTW 방송국에서 일어났고, 이번에도 '맥스 헤드룸'의 기괴한 마스크를 쓴 괴인이 화면을 점령했다. 그는 이번에도 명확하지 않은 말을 뱉어내며, 기분 나쁘게 웃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번에는 영상과 음성 모두 정상적으로 전송되었고, 화면 속에서 그가 펼친 기괴한 행동은 더 이상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될 수 없었다. 사람들이 보고 있는 것은 마치 현실의 끝자락에서 일어나는 또 다른 차원의 괴이한 사건처럼 보였...

[세계사건]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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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1월 6일, 미국 국회의사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의 습격을 받았다. 이들은 제46대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 인증을 저지하고, 트럼프의 패배를 번복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폭동을 일으켰다. 트럼프가 주관한 집회에서 수천 명의 지지자들이 펜실베이니아 애비뉴를 행진한 뒤 국회의사당에 난입하였다. 이들은 선거인단 개표를 방해하고,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 공식화를 막으려 했다. 습격자들은 국회의사당 내부로 침입하여 일부 건물을 점령하고 파괴했다. 시위대는 경찰 경계선을 뚫고, 의회경찰대와 충돌하면서 국회의사당을 점거했다. 이 공격으로 5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당했다. 또한, 급조된 폭발물이 발견되었고, 국회의사당과 인근 건물은 모두 폐쇄되었다. 시위대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을 인질로 삼으려 했고, "펜스를 교수형에 처하라"는 외침도 있었다. 트럼프는 처음에 군을 보내 시위대를 진압하는 데 반대했으며, 시위대에게 '위대한 애국자'라고 부르며 평화롭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질서 있는 권력 이양을 약속하고, 사건은 그날 저녁에 마무리되었다. 1월 7일, 선거인단 집계가 재개되어 바이든과 카멀라 해리스가 공식적으로 대통령과 부통령 당선자로 확정되었다. 이 사건은 미국 정치 지도자들의 비난을 받았으며, 트럼프의 행위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다. 일부 공화당원은 공격을 지지하거나 트럼프를 비난하지 않았고, 연방수사국은 170건 이상의 수사를 진행 중이다. 1월 13일, 하원은 트럼프를 '반란 선동'으로 탄핵하였고,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두 번 탄핵된 대통령이 되었다. 2021년 1월 6일의 국회의사당 습격은 1814년 영국군의 침략 이후 처음으로 국회의사당이 침범된 사건이었다. AP통신은 코로나19 팬데믹과 그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 등의 방역 조치가 극단주의와 폭력적인 성향의 확산을 촉진시켰다고 분석했다. 이로 인해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미국 민병대 운동 같은...

[세계사건] 크리스틴 처벅의 마지막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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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TV 40은 시청자들에게 실시간으로 자극적인 보도를 가장 빠르고 완벽하게 보도하는 WXLT의 관행에 따라, 선명한 컬러 방송으로 독점 보도로 찾아뵙는 자살 시도입니다."  미국의 뉴스 리포터인 크리스틴 처벅은 오하이오주 허드슨에서 태어나 보스턴 대학을 졸업한 후, 플로리다주 새러소타의 지역 방송국 WXLT-TV에서 토크 쇼 《Suncoast Digest》를 진행하였다. 그녀는 기자로서 장애인 문제와 지역 공동체 문제에 관심을 보였으며, 사망 직전에는 플로리다 농업부에서 지역 진흥에 기여한 공로로 후보에 오르기도 하였다. 1974년 7월 15일, 방송이 시작된 지 8분 후, 크리스틴은 대본을 무시하고 자살을 시도하였다. 그녀는 S&W M36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았고, 방송국 직원들과 시청자들은 경악하였다. 방송국은 프로그램을 강제 종료하고 공익광고와 영화 프로그램으로 대체하였으며, 그녀는 즉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러나 14시간 후 뇌손상으로 사망하였다. 크리스틴은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이전에도 자살 시도를 한 경험이 있었다. 자살하기 전 주에 총을 구입하였으며,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해 타인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녀는 동료 남성 기자를 짝사랑하였지만, 자신의 친한 친구와의 관계가 좋았고 그 친구가 전근을 가게 되어 소외감을 느꼈다. 또한, 병원에서 난소에 이상이 있어 2-3년 내에 임신하지 않으면 영원히 불임이 될 것이라는 충격적인 진단을 받았다. 크리스틴의 시신은 화장되었고, 장례식은 그녀가 자주 찾던 멕시코 만의 해변에서 치러졌다. 약 120명이 조문하였고, 그녀가 좋아했던 가수 로버타 플랙이 추모곡을 불러주었다. 이 사건은 충격적이어서 대한민국에서도 여러 신문을 통해 보도되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2년 후인 1976년에 개봉된 시드니 루멧의 영화 <네트워크>에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데이브 이조프의 저서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각본가인 차예프스키는 처벅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하워드가...

[세계사건] 1883년 크라카타우 화산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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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3년, 인도네시아 순다 해협의 바다 속에 숨겨진 폭발적인 비밀이 풀리려 했다. 그 땅의 중심에는 크라카타우 화산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 화산은 오랜 세월 동안 잉태된 불의 신이었고, 그 잠자는 화산은 한 번의 폭발로 역사를 바꾸려 했다. 이 폭발은 그 누구도 예고할 수 없었고, 시간이 지나면 지나갈수록 그 충격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커져갔다. 크라카타우 화산의 역사는 한 편의 고대 이야기처럼 복잡했다. 고대의 크라카타우는 약 416년, 한 차례의 엄청난 폭발을 겪고, 그 후 지구는 치명적인 침묵에 휩싸였다. 그때 형성된 해상 칼데라는 크라카타우의 위대한 변화를 예고하는 듯했다. 그리고 535년, 또 다른 대폭발이 있었다. 이 분화는 역사상 가장 끔찍한 한 해, 536년을 불러왔다. 하늘을 덮은 연기와 재가 전 세계를 휩쓸었고, 기후는 얼어붙고 기근은 퍼졌다. 이 시기, 크라카타우는 이미 그 자신을 재건하고 있었다. 라카타, 다난, 퍼부탄이라는 세 개의 화산이 함께 뭉쳐, 현재의 크라카타우 섬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1883년의 분화에 의해 다시 한 번 깨어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해, 화산의 심장이 다시 깨어났을 때, 그 누구도 그 폭발의 규모를 예상할 수 없었다. 5월 20일, 첫 번째 불길이 하늘을 찢고 올라갔다. 그리고 여진과 작은 폭발들이 반복되면서, 사람들은 점점 이 끔찍한 예감에 빠져들었다. 순다 해협을 지나던 수많은 선박들이 이 폭발을 목격했지만, 아무도 그 후폭풍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랐다. 8월 26일, 대폭발이 시작되었다. 이 폭발의 진원지, 크라카타우 화산은 25킬로미터나 치솟은 화산재 기둥을 하늘로 뻗어 올렸다. 순다 해협 전역에 퍼진 화산재와 부석은 태양의 빛을 거의 완전히 가려버렸다. 이틀 동안, 세상이 어두워지고 차가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리고 바다를 가로질러 40킬로미터를 달려간 화산쇄설류가 수마트라 섬의 해안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칼데라가 함몰되면서, 대양은 소용돌이처럼 ...

[세계사건] 애쉬 스트리트 총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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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9월 23일, 워싱턴주 타코마의 힐탑 지역에서 일어난 '애쉬 스트리트 총격전'은 미국 육군 레인저들이 총격을 주고받은 사건이었다. 사건의 배경은 마약 밀매와 갱 활동이 만연한 이웃과의 갈등에서 비롯됐다. 당시, 2대 레인저 대대 소속의 직원상사인 빌 풀크는 이 지역에서 심각한 범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찰의 더 강력한 대응을 촉구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어난 사건은 결국 지역 사회와 경찰의 관계, 그리고 타코마 경찰의 근본적인 개혁을 촉발시켰다. 1987년, 풀크는 타코마의 힐탑에 있는 낡은 집을 1만 달러에 구입했다. 그는 이 집을 수리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했지만, 이웃 지역은 점차 마약과 폭력에 시달리게 되었다. 1989년 여름, 풀크가 파나마에서 복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이웃들과 함께 지역 경찰에 마약 밀매와 갱단 활동에 대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타코마 경찰은 예산과 인력이 부족해 힐탑 지역의 치안에 소홀한 상태였다. 경찰의 미온적인 대응에 풀크는 이웃들과 함께 마약 밀매가 이루어지는 집을 감시하고 사진을 찍어 증거를 모았다. 특히 풀크의 집 맞은편에 위치한 마약 밀매 집은 주민들에게 큰 문제였다. 그들은 마약 밀매를 부인했지만, 풀크는 그곳의 활동을 감시하고, 이 집의 움직임을 기록하기 위해 집 창문에 비디오 카메라를 설치했다. 그리고 9월 23일, 풀크는 이웃들과 함께 바비큐 파티를 열고 마을의 치안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그는 다른 레인저들에게 무기를 지참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바비큐 파티 도중, 맞은편 집의 사람들은 비디오 카메라에 돌과 썩은 배를 던지며 위협적인 제스처를 취했고, 한 명은 풀크의 집을 향해 BB총으로 총격을 가했다. 풀크와 몇몇 레인저들은 이에 대해 맞서기 위해 맞은편 집으로 가서 대치했다. 풀크는 자신이 촬영 중인 활동을 멈추지 않았고, 그들은 풀크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나 맞은편 집 사람들은 레인저들이 그들을 조롱하...

[세계사건] 독이 든 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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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10월 31일, 텍사스의 작은 도시 디어 파크. 어린이들이 할로윈을 맞아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탕을 받았다. 웃음소리와 함께 즐거운 분위기가 가득한 밤이었지만, 한 가족에게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비극이 시작되고 있었다. 로널드 클락 오브라이언은 디어 파크의 평범한 가정에서 살고 있었다. 아내 데이넨과 두 자녀, 티모시와 엘리자베스와 함께 살던 그는 마을에서 믿음직한 직장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텍사스주립안경점(Texas State Optical)에서 일하는 안경사였고, 지역 교회에서는 집사로 봉사하며,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겉보기와 달리 매우 불안정했다. 그는 수많은 직업을 전전하며, 돈 문제로 항상 고민하고 있었다. 그 날도 평범한 할로윈이었다. 오브라이언은 두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섰다. 그의 이웃도 함께 했고, 그들은 여러 집을 돌며 사탕을 받았다. 하지만 한 집에서 문을 열지 않자, 아이들은 불만을 품고 다음 집으로 달려갔다. 오브라이언은 뒤따라가며, 아이들에게 나눠줄 픽시 스틱(Pixy Stix) 다섯 개를 꺼냈다. 그가 나눠준 사탕 중 하나는, 단지 맛있는 과자가 아니라 치명적인 독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집에 돌아오자, 티모시가 사탕을 먹겠다고 했다. 그는 픽시 스틱을 고른 뒤, 아버지에게 그것을 열어 달라고 부탁했다. 사탕을 먹은 티모시는 쓴 맛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빠, 이거 쓴 맛이 나요." 그러자 오브라이언은 찬 음료인 쿨에이드를 건네며 그 쓴 맛을 없애라고 했다. 그러나 티모시는 곧 복통을 호소하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그는 구토를 시작했고, 몸은 서서히 힘을 잃어갔다. 오브라이언은 아들이 그의 품에서 점점 힘이 빠져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티모시는 끝내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사망했다. 티모시의 죽음은 이 작은 마을을 충격에 빠뜨렸다. 주민들은 자녀들이 받은 사탕에 독이 들어있지 않았나 걱정하며, 경찰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찰은 처음에는 오브라이...

[세계사건] 크리스마스 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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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의 치열한 참호 속에서, 전쟁의 참혹함과 고통은 인간의 존엄성을 일찌감치 부수어버린 듯 보였다. 두 진영은 수개월 간 대치하며 서로의 생명을 앗아갔고, 그들은 서로를 적으로만 인식했다. 그러나 그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영국군 병사 톰은 그날 아침, 굳어진 손으로 참호 속에서 묵묵히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고 있었다. 전쟁 중의 성탄절이라, 분위기는 어두웠고, 기쁨은 없었다. 그는 가족도, 집도 그리워하며, 누군가와 함께 웃으며 보낼 날을 상상했다. 그 때, 다른 참호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그의 귀에 닿았다. 그건 독일군의 노래였다. 고요한 겨울 밤을 함께 부르는 듯한 음성이었다. 톰은 놀랐다. 적군도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것일까? 그들은 서로를 죽이려는 존재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톰의 마음에 불꽃이 일었다. 그는 잠시 주저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군용 헬멧을 벗어 들고, 옆에 있던 동료에게 말했다. "혹시, 우리가 그들의 참호를 향해 나가면 그들이 총을 쏠까?" 동료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톰의 눈빛을 보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톰과 몇 명의 병사는 용기를 내어 참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들이 눈을 맞춘 곳에서, 한 명의 독일군 병사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들고 참호 밖으로 나와 그들 앞에 섰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누구도 총을 쏘지 않았다. 서로 다른 군복을 입고, 적으로서 대치하던 두 병사는 그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처음으로, 무기를 놓은 손으로 서로를 마주 잡은 순간이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독일군 병사도 그에게 답했다. 그 순간, 서로 간의 적대감은 사라졌다. 전쟁은 잠시 멈췄고, 사람들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갔다. 참호 밖에선 악수와 웃음이 오갔고, 몇몇 병사들은 서로의 군복을 교환하며 작은 기념품을 나누었다. 작은 담배 한 개와 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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