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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건] 세계에서 가장 오래 복역한 사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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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카마타 이와오(1936년 3월 10일 ~ )는 일본의 전직 권투 선수로, 1966년에 시즈오카현 시미즈 시에서 자신이 일하던 된장제조회사의 전무 일가족 4명을 살해하고 방화한 혐의로 기소되어 1980년 사형 확정판결을 받았다. 하카마타는 체포 직후 혐의를 인정했지만, 이후 첫 재판부터 경찰의 강압적인 심문에 의해 자백했다고 주장하며 무죄를 주장해왔다. 하카마타의 누나인 히데코는 동생의 무죄를 호소하며 1981년부터 재심 청구를 시작했으나 대법원은 27년 후인 2008년 3월 특별항고를 기각했다. 그러나 같은 해 4월, 2차 재심 청구가 이루어졌고, 이 과정에서 당시 검찰이 범인의 옷에 묻었다고 주장한 혈액 유전자와 하카마타의 것이 일치하지 않았으며, 수사기관에 의한 증거 조작이 있음을 지적했다. 2014년 3월 27일, 하카마타의 사형과 감옥의 집행 정지 및 재심이 결정되었고, 2024년 9월 26일에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이 사건은 일본변호사연합회가 지원하는 재심 사건으로 ‘하카마타 사건’이라고 불린다. 하카마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복역한 사형수’로 알려져 있으며, 88세인 지금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카마타가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은 1966년에 발생한 일가족 4명 살해 사건이다. 피해자들은 칼에 찔려 숨진 상사 부부와 두 자녀였으며, 수사당국은 하카마타가 이들을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지른 뒤 현금 20만엔을 훔쳐 달아난 것으로 판단했다. 하카마타는 처음에는 범행을 부인했으나, 경찰의 폭행과 강압적인 심문 끝에 자백했다. 1968년, 그는 살인 및 방화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수십 년에 걸친 법적 공방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피 묻은 옷에서 시작되었다. 이 옷들은 하카마타의 유죄를 입증하는 증거로 사용되었지만, 그의 변호사는 이 옷에서 채취한 DNA가 하카마타의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다른 사람의 것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수사 당국이 증거를 조작했을 가능성도 제기되었으며, 이를 믿은 무라야마 히로아키 판사는 ...

[일본사건] 이시이 마이 양 실종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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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 7월 25일, 일본 후쿠시마현 후네히키마치에서 일어난 어린이 실종 사건은 일본 3대 미해결 어린이 실종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사건은 유력한 용의자가 존재하는 몇 안 되는 사건 중 하나로, 여전히 많은 미스터리를 남긴 채로 해결되지 않았다. 사건이 일어난 날, 건축업자 이시이 켄이치의 집에는 켄이치의 부모, 그의 아내 요시코, 두 아들 켄토와 레오, 그리고 딸 마이, 켄이치의 조카와 그 조카의 남자친구인 K, 요시코의 친구의 딸 두 명이 함께 있었다. 이 날 오후, 켄이치의 부모는 노래방에 갔고, 마이와 다른 두 아이는 K의 방에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밤 10시 30분, 요시코는 아이들이 자고 있는 방에 들어가 이불을 덮어준 후 2층 화장실로 갔다. 그곳에서 요시코는 K가 집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봤으나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잠시 후, 다시 문이 닫히는 소리와 누군가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를 들었지만 여전히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요시코는 목욕을 마친 후, 남편과 아들들이 자고 있는 방으로 돌아가 잠에 들었다. 새벽 2시, 켄이치의 부모가 노래방에서 돌아왔을 때, 집의 현관문은 잠겨 있지 않았고 열려 있었다. 그들은 K가 집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잠이 덜 깬 켄이치는 "내일 이야기하자"며 다시 잠이 들었다. 새벽 5시 20분경, 마이와 함께 자던 두 어린이가 깨어보니 마이가 사라져 있었고, 아이들은 이를 켄이치와 요시코에게 알렸다. 마이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가족들이 알게 된 후, 경찰이 집안을 수색했으나 가족이 아닌 사람의 지문이나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누군가 마이를 납치해 현관 앞에 대기시킨 후 차에 태워 갔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사건 당시, 밤 11시경, 집 근처에 흰색 차가 있었으나, 이 차의 차주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마이의 어머니 요시코와 K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수사를 진행했다. K는 사건 당시 밤에 집을 나갔다가 아침 6시 30분쯤 집으로 돌아왔고, 친구를 만나기 ...

[일본사건] 악마의 시 번역자 피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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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 일본에서 발생한 이가라시 히토시 교수의 피살 사건은, 그가 살만 루슈디의 논란이 된 작품 《악마의 시》를 일본어로 번역한 것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건은 1991년 7월 11일, 이가라시가 쓰쿠바대학 건물 내 엘리베이터 앞에서 정체불명의 인물에게 살해당하는 형태로 일어났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현장에서는 O형의 혈액과 중국제 쿵푸용 신발 자국이 발견되었지만, 범인을 특정할 만한 결정적인 단서는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이란 정부는 《악마의 시》에 대한 강력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이란은 루슈디와 관련된 사람들을 처벌하라는 명령을 내린 상태였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할 때, 이 사건은 이란 정부의 특수요원이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테러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또한, 이와 유사한 사건이 다른 번역자들에게도 발생한 바 있다. 하지만 이가라시는 무슬림이 아니었으며 이슬람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일부는 그가 《악마의 시》를 번역한 것에 대해 불쾌감을 느낀 사람이 저지른 테러일 수도 있다고 보았다. 반면, 사건이 단순한 테러가 아니라 개인적인 원한에 의한 범행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가라시 교수는 연구실이 아닌 엘리베이터 앞에서 살해당한 점이 의문을 자아냈고, 이는 범인이 은폐하기 쉬운 장소에서 살해하지 않고 노출된 장소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일본 정부는 이란과의 외교적 문제를 우려해 사건을 신속히 종결시키려 했고, 그로 인해 사건 수사는 마무리되지 않았다. 경찰은 범인을 찾는 데 한계가 있었고, 결국 사건의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이가라시가 쓴 메모가 발견되었는데, 그 안에는 "단노우라에서 죽는다"는 내용이 프랑스어로 "계단에서 살해당한다"로 적혀 있어,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그 후 이 사건은 여러 매체에서 다루어졌고, 특히 2012년 5월 20일 방송된 신비한 TV 서프...

[일본사건] 3억 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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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8년 12월, 일본의 한 평범한 도시에서 일어난 사건은 마치 소설의 한 장면처럼 극적인 전개를 보였다. 일본 신탁은행 코쿠분지 지점장이 집으로 배달된 협박장을 받은 뒤, 단순한 장난으로 여겨졌던 일은 그날 저녁, 또 다른 사건으로 이어졌다. 그 협박은 "지점장의 집을 폭파하겠다"는 내용이었고, 경찰은 이를 중대하게 받아들였지만 사건은 결국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건은 여전히 그 미스터리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1968년 12월 10일 오전, 일본 신탁은행은 현금 수송차에 3억 엔을 실어 출발했다. 당시의 현금 수송차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특수한 차량이 아닌, 그저 평범한 세단이었다. 무엇보다, 이 수송차가 결국 일본 역사상 가장 대담한 현금 탈취 사건의 한 복판에 서게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수송차가 도쿄의 후추 형무소 근처에 도착했을 때, 한 경찰이 모터사이클을 타고 나타났다. 그 경찰은 현금 수송차의 기사에게 다가가 말했었다. "스가모 지점장이 집이 폭파되었고, 이 차량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이 차를 조사해야 한다." 말은 그럴듯했지만, 그 경찰이 아무리 조사해도 폭탄은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 그 경찰은 갑자기 "폭탄이다! 피해라!"라며 고함을 질렀고, 수송차의 트렁크에서는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경찰은 수송차를 그대로 몰고 사라졌고, 기사와 탑승자들은 그저 황급히 도망쳤다. 그 순간, 현금 수송차는 도둑에게 넘어갔고, 경찰은 범인의 흔적을 뒤쫓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의 추적은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수송차의 궤적을 따라가던 경찰은 몇 가지 단서를 찾았지만, 결국 그 어떤 결정적인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 범인은 이미 사라졌고, 경찰은 그 후로도 아무리 수사를 해도 그를 잡지 못했다. 그 후, 경찰은 용의자 몽타주를 만들었고, 그 몽타주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의 사진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사건은 더욱 미궁에 ...

[일본사건] 포켓몬 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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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12월 16일 화요일, 일본 테레비 도쿄 등 TX계 6개 지역민방에서 방영되던 초대 포켓몬스터 38화 '전뇌전사 폴리곤(電脳戦士ポリゴン)'이 방영될 때, 다수의 시청자들이 발작을 일으킨 사건이다.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발작을 일으킨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기네스북에도 등록되어 있다. 제일 잘 알려진 명칭은 포켓몬 쇼크 사건이며, 이 외에도 '폴리곤 쇼크(ポリゴンショック)', '전뇌전사 폴리곤 사건(ポケモン (ポリゴン) 事件 해당 에피소드 이름)', '폴리곤 플래시(ポケモン (ポリゴン) フラッシュ)' 등의 명칭으로 불린다. 또한, 사건의 원인이 폴리곤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피카츄 쇼크(ピカチュウショック)', '피카츄 플래시(ポケモン(ピカチュウ)フラッシュ)' 등으로 부른다. 38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지우 일행은 여행에 지친 피카츄를 회복하기 위해 포켓몬센터에 도착했으나, 포켓몬센터는 전송 시스템 문제로 바쁜 상태였다. 포켓몬센터에서 전송한 포켓몬과 상대방이 받는 포켓몬이 전혀 다른 현상이 발생하고 있었으며, 포켓몬 전송 시스템을 발명한 아키하바라 박사까지 문제 해결을 위해 찾아온 상태였다. 웅이는 간호순에게 바이러스에 걸렸을 수도 있으니 백신을 사용해볼 것을 권유했다. 그러던 중 아키하바라 박사는 뭔가를 깨달은 듯 자리를 떴다. 간호순이 알려준 대로 아키하바라 박사의 연구소에 찾아간 지우 일행은 박사에게 속아 박사가 발명한 포켓몬인 폴리곤과 함께 전송 시스템 내부로 강제로 들어가게 된다. 아키하바라 박사와의 대화에서 로켓단 삼인방이 박사의 폴리곤 0호기를 훔쳐 전뇌 세상으로 침투해 바이러스를 설치하고 이를 통해 포켓몬을 훔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백신을 설치하면 삼인방이 죽기 때문에 이 방법을 강행한 것이다. 지우 일행과 폴리곤은 0호기와 삼인방과 조우하여 승리한다. 그러나 그 직후 간호순은 다른 사람을 통해 백신을 전송 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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