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992년 휴거
1992년 휴거
1992년 10월 28일, 한국은 다미선교회의 이장림 목사가 예고한 ‘휴거’라는 종말의 날을 맞이하려 했다. 이장림은 1980년대 후반부터 ‘휴거론’을 내세우며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그가 믿었던 것은 성경의 예언에 따른 세대주의적 종말론이었으며, 특히 1992년 10월 28일에 휴거가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휴거란 신도들이 하늘로 올라가고, 지구에 남은 사람들은 환난과 적그리스도의 통치 하에 고통을 겪는다는 믿음이었다. 이장림 목사는 "1992년 10월 28일"이라는 날짜를 지정한 뒤, 사람들을 준비시키며 신도들에게 재산을 헌납하게 했다.
휴거론은 그 당시 한국 사회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이 교리를 믿고, 심지어 격투기를 배우는 등 ‘생존주의적’ 대비를 하기도 했다. 1991년 걸프 전쟁과 1999년 지구 멸망설이 사회에 퍼지면서 불안한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이에 휴거론 신봉자들의 수가 늘어났다. 대중은 휴거론을 믿지 않았지만, 사회적 혼란과 범죄 우려 때문에 미약하게나마 불안을 느꼈다.
1992년 10월 28일, 다미선교회와 관련된 교회에서는 휴거가 일어날 것이라며 준비했지만, 그 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장림 목사는 이미 한 달 전 사기 혐의로 구속되어 있었다. 그의 사기 행위는 신도들에게 재산을 헌납받고 이를 가로챈 것이었으며, 휴거 예정일인 10월 28일 이후에는 그의 사기 혐의가 더욱 확실해졌다. 휴거가 불발되자, 분노한 신도들은 교회에서 난동을 부렸고, 일부는 휴거의 기적을 기다리다 무너져 내렸다.
그날 밤, 이장림은 철저히 감시를 받으며 수감 중에도 평상시처럼 성경을 읽고 잠자리에 들었다. 10월 29일, MBC 뉴스는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간단한 멘트로 상황을 보도했다. 그 후, 많은 언론에서 이 사건을 취재하며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다루었다. 일부 신도들은 휴거가 일어나지 않자, 이전의 믿음을 되돌아보며 참담해했다.
휴거론은 다미선교회의 영향을 받아 많은 개신교 신자들 사이에서도 확산되었고, 이후 일부 광신도들은 자신의 믿음을 계속 고수하려 했지만, 결국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웃지 못할 해프닝으로 남게 되었다. 이장림 목사는 휴거 불발 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믿음을 고수하며, 그가 주장한 종말론은 결국 사회적 비판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