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건] 혜화동 무장 탈영병 총격 난동사건
1993년 4월 19일,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에 위치한 대한민국 육군 제15보병사단의 전차중대에서 복무 중이던 일병 임채성이 부대를 무장 탈영하며 대한민국을 뒤흔든 사건이 발생했다. 임채성은 K1 기관단총, 실탄 130여 발, 수류탄 22발을 탈취하고, 철원에서 인질을 잡아 기아 베스타 승합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이 사건은 마치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본 것처럼, 전례 없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벌어졌다.
임채성은 민간인으로 위장한 채 여러 검문소를 통과했으며, 결국 서울에 도달했다. 서울의 혜화동에서 군의 추격을 받으며 시가전을 벌인 임채성은 자신이 발각되자 민간인들에게 총기와 수류탄을 난사하며 총격을 시작했다. 당시 서울 시내는 전쟁터처럼 변했고, 사람들은 대피하며 혼비백산했다. 경찰이 포위했으나, 권총으로는 K-1 기관단총 앞에 상대가 될 수 없었고, 결국 수도방위사령부의 특수부대가 출동해 집중사격을 가했다. 임채성은 복부와 후두부에 총상을 입고 생포되었고, 국군수도병원으로 후송되어 군사재판을 받았다.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이후 교도소에서 20년을 복역한 후 출소했다.
사건 중, 임채성의 총격으로 7명이 부상을 입었고, 그 중 1명이 사망했다. 사망자는 고성주라는 상인으로, 채소 가게를 운영하며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날도 일을 하다 변을 당한 그는 임채성을 피해 도망치던 중, 총을 맞고 숨졌다. 임채성의 무차별적인 총격은 서울 시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고, 당시 현장 근처에 있던 의료진들은 비상 소집되어 응급처치에 나섰다.
임채성은 군 복무 중에 여러 차례 말썽을 일으킨 인물이었다. 1992년,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단기 하사관 장학생으로 입대했으나, 친구들과 어울리며 문제가 되기도 했다. 군 입대 전 금품을 갈취해 경찰에 구속된 일도 있었으며, 부사관 후보생으로 입대 후에는 탈영을 감행하기도 했다. 그의 행동은 평판이 좋지 않았고, 결국 군 복무에 대한 염증이 이번 탈영의 원인으로 추정되었다.
탈영 후, 임채성은 서울로 향하는 길에 여러 검문소를 통과하며 군과 경찰의 추격을 피해갔다. 그가 서울에 도달한 후의 사건은 대한민국 군과 경찰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당시 철원과 서울 일대는 완전한 전쟁터처럼 변했다.
이 사건은 임채성의 출소 후에도 계속해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2013년, 임채성은 1993년의 사건에 대한 판결이 다른 사건의 재판 중 다시 알려지면서 세상에 다시 등장했다. 이후 2023년, 그는 또다시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이번에는 랜덤 채팅으로 만난 여성에게 도끼로 협박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건에서도 그는 피해자와 합의한 후,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2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