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건] 크리스마스 정전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의 치열한 참호 속에서, 전쟁의 참혹함과 고통은 인간의 존엄성을 일찌감치 부수어버린 듯 보였다. 두 진영은 수개월 간 대치하며 서로의 생명을 앗아갔고, 그들은 서로를 적으로만 인식했다. 그러나 그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영국군 병사 톰은 그날 아침, 굳어진 손으로 참호 속에서 묵묵히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고 있었다. 전쟁 중의 성탄절이라, 분위기는 어두웠고, 기쁨은 없었다. 그는 가족도, 집도 그리워하며, 누군가와 함께 웃으며 보낼 날을 상상했다. 그 때, 다른 참호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그의 귀에 닿았다. 그건 독일군의 노래였다. 고요한 겨울 밤을 함께 부르는 듯한 음성이었다.
톰은 놀랐다. 적군도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것일까? 그들은 서로를 죽이려는 존재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톰의 마음에 불꽃이 일었다. 그는 잠시 주저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군용 헬멧을 벗어 들고, 옆에 있던 동료에게 말했다.
"혹시, 우리가 그들의 참호를 향해 나가면 그들이 총을 쏠까?"
동료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톰의 눈빛을 보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톰과 몇 명의 병사는 용기를 내어 참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들이 눈을 맞춘 곳에서, 한 명의 독일군 병사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들고 참호 밖으로 나와 그들 앞에 섰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누구도 총을 쏘지 않았다. 서로 다른 군복을 입고, 적으로서 대치하던 두 병사는 그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처음으로, 무기를 놓은 손으로 서로를 마주 잡은 순간이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독일군 병사도 그에게 답했다.
그 순간, 서로 간의 적대감은 사라졌다. 전쟁은 잠시 멈췄고, 사람들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갔다. 참호 밖에선 악수와 웃음이 오갔고, 몇몇 병사들은 서로의 군복을 교환하며 작은 기념품을 나누었다. 작은 담배 한 개와 한 조각의 초콜릿이 그날, 가장 큰 선물이 되었다.
하지만 기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잠시 후, 어느 영국군 병사가 말했다.
"우리가 여기서 뭐 하고 있죠? 축구를 할까요?"
그 말에 독일군 병사들은 깔깔거리며 웃었고, 그들은 급히 주변의 빈터에 시체를 치우고, 간단한 축구 경기를 시작했다. 톰과 그의 동료들은 발끝으로 공을 차며 서로의 실력에 웃음꽃을 피웠다. 물론, 경기는 별다른 승패를 가리지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함께 웃으며 크리스마스를 보낸 것, 그리고 다시 한 번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날, 그들은 전쟁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관계를 나누었다. 그들은 다시 무기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 대신, 손끝에 있었던 총 대신, 손끝에 있었던 따뜻함을 기억했다. 전쟁이 끝나면 다시 서로 적이 될 수밖에 없지만, 그 날만큼은, 적이 아닌 사람으로서 서로를 존중했다.
그 사건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잠시 나타난 섬광 같은 기적이었다. 그날 크리스마스에 영국군과 독일군은 적이 아닌 인간으로서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나눈 웃음은, 결국 그들에게 가장 큰 승리가 아니었을까?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전쟁 속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에 불씨를 지피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