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료에이마루 조난 사건
1926년 12월, 일본의 어선 ‘료에이마루(良栄丸)’호는 가나가와현 미사키 어항을 떠난 뒤 불운의 시작을 맞이했다. 작은 동력선인 이 배는 그 당시 대부분의 어선들과 마찬가지로 무선통신 장비도 없이 바다를 떠돌고 있었다.
겨울의 거센 바람 속에서, 료에이마루는 치바현 조시 앞바다에서 악천후를 만났다. 12월 6일, 이들은 잠시 항구에 들어와 엔진을 점검했지만, 선장의 예감처럼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엔진이 고장 나고 배는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12일, 고장이 난 배는 바람을 거슬러 본토로 돌아가기는커녕, 서풍에 밀려 바다에 떠내려갔다.
이들의 비극은 그저 기계적 결함이나 날씨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선장 미키 토키조는 배의 운명을 고백하며, "바람에 맡겨서, 차라리 미국을 향해 가자"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미키 선장의 결단은 운명처럼 보였지만, 그 누구도 이들의 여정이 이렇게까지 비참할 줄은 몰랐다.
날이 갈수록 배는 점점 더 표류의 깊은 늪으로 빠져들었다. 식량은 한정되어 있었고, 선원들은 살아남기 위해 매일 힘겹게 바다를 떠도는 나날을 보냈다. 간신히 잡은 생선과 비가 내릴 때마다 모은 물로 그들의 생명줄을 이어갔다. 하지만 배의 운항은 점점 불안정해졌고, 여러 차례 지나가는 배들에게 구조 신호를 보내지만, 그들 모두 무시하고 지나쳤다.
기록을 남긴 일지에서 선원들의 심경은 점차 비통해졌고, 3개월이 지난 3월 6일, 그들은 결국 기력을 다해 마지막 유서를 썼다. 죽음이 임박하자, 선원들은 각자 이름을 남기며 마지막 순간을 준비했다. "우리는 다이쇼 15년 12월 5일, 미사키에서 출발하여, 오늘까지 구차한 목숨을 보존했다. 여기서 죽기를 결심한다."
3월부터 선원들은 차례로 쓰러졌다. 한 명, 또 한 명, 그들은 점점 무기력해졌다. 결국, 4월 19일, 마지막 생존자였던 우에히라도 쓰러졌고, 선장 미키와 마츠모토만이 남게 되었다. 그러나 끝내 이들의 영양실조와 각기병은 그들을 무너뜨렸고, 5월 11일, 그들의 마지막 항해일지 기록이 남긴 뒤, 더 이상 기록은 없었다.
료에이마루의 선원들이 표류한 지 정확히 10개월, 그들의 비극적 항해는 마침내 끝을 맞이했다. 10월 31일, 미국 시애틀 앞바다에서 그들의 배는 화물선 ‘마가렛 달러호’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곳에서 발견된 미키 선장과 마츠모토의 시신은 일본으로 돌아가 유족에게 전달되었으나, 배는 미국 땅에서 불태워졌다. 이 배는 더 이상 돌아올 수 없었다.
료에이마루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배의 표류와 죽음을 넘어서, 인간의 의지와 생존을 향한 마지막 결단이 어떻게 역사 속에 비극적으로 새겨졌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로 남았다. 그리고 그들의 유해는 먼 나라에서 다시 돌아왔지만, 그들의 영혼은 끝내 바다의 품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