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건] 개구리 소년 사건

カエル少年事件


 1991년 3월 26일, 대구 달서구 성서 지역에서 5명의 초등학생들이 도롱뇽 알을 찾으러 와룡산으로 올라갔다가 실종되었다. 그들의 실종은 당시 전국적인 이슈로 떠오르며, 2002년 9월 26일, 실종된 지 11년 6개월 만에 유골이 발견되었지만, 사건의 범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이 사건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 이형호 유괴 살인 사건과 함께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미제사건으로 손꼽히며, 범인의 윤곽도, 피해자의 신원도 밝혀지지 않아 많은 의문을 낳았다.

이 사건이 처음 보도되었을 때, 아이들이 도롱뇽 알을 찾으러 간다고 전해졌으나 언론의 오보로 인해 도롱뇽이 아닌 개구리로 알려지면서 '개구리 소년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실제로 아이들은 도롱뇽 알을 찾으러 갔지만, '개구리 소년'이라는 잘못된 명칭이 붙여지게 된 이유는 당시 도롱뇽에 대한 공포감을 줄이기 위해 개구리로 잘못 보도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사건은 당시 경찰의 초동 수사 실패로 인해 실종 당시부터 의문점이 많았다. 특히, 아이들이 실종된 와룡산은 마을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곳이었고, 수많은 수색에도 불구하고 단서 하나 발견되지 않았다. 사건 당시 아이들이 여러 사람에게 목격되었으나, 범인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았고, 사건은 점점 미궁에 빠졌다. 1991년 5월, 당시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군과 경찰이 대규모 수색을 벌였지만, 사건의 해결은 요원했다.

5명의 아이들은 우철원(6학년), 조호연(5학년), 김영규(4학년), 박찬인(3학년), 김종식(3학년) 등으로, 모두 성서초등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이었다. 사건 발생 당일, 아이들은 와룡산으로 도롱뇽 알을 찾으러 갔고, 실종된 뒤부터 부모들은 밤새도록 아이들을 찾았으나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경찰은 수많은 제보와 허위 정보에 휘말려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사건이 벌어진 후, 수많은 제보가 쏟아졌고, 전국적으로 아이들을 찾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다. 수색은 1996년까지 진행되었으나, 결국 아이들의 시신은 2002년에야 발견되었다. 그 지역은 군부대 사격장이 있었고, 사건 당시 아이들은 군부대 근처로 갔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유골 발견 후 경찰은 부검을 실시했지만, 타살의 가능성만 추정할 뿐 정확한 사망 원인이나 범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경찰은 사건의 수사를 2003년까지 진행했으나 범인을 찾지 못했고, 2005년에는 유족들이 공소시효 연장을 촉구했지만, 2006년에는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 사건은 사실상 종결되었다. 이후 사건은 2015년에 내사 종결되었고, 현재까지도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 사건은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으며, 5명의 어린이들의 비극적인 죽음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수사와 수많은 제보에도 불구하고 범인에 대한 단서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고, 유족들은 여전히 그들의 아이들이 누구에게, 왜,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진실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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