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세이킬로스의 비문
세이킬로스의 비문(Επιτάφιος του Σείκιλου, Seikilos Epitaph) 또는 세이킬로스의 노래는 고대 그리스 트랄레스에서 출토된 기둥에 새겨진 비문과 그 비문에 담긴 음악을 가리킨다. 이 비문은 1883년 스코틀랜드의 고고학자 윌리엄 램지 경이 튀르키예 에페소스 근교의 아이든 지역에서 발견한 것으로, 고대 그리스 도시 트랄레스의 폐허에서 나온 것이다. 비문에는 하나의 노래가 가사와 함께 고대 그리스 기보법으로 새겨져 있다.
이 비문은 기원후 1세기에서 2세기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비문이 금석학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현존하는 악보 중에서 곡이 완성된 형태로 보존된 가장 오래된 음악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작곡가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비석에 등장하는 세이킬로스가 작곡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비석은 발굴된 후 관리되지 않아 한동안 실종되었으나, 튀르키예 독립 전쟁 동안 스미르나(현재의 이즈미르) 항구에서 다시 발견되었다. 이후 1966년 덴마크 정부에 의해 코펜하겐에 있는 덴마크 국립 박물관으로 이송되어 현재까지 전시되고 있다.
비문에는 서문, 악보, 그리고 비문을 남긴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서문에는 "나는 돌이요 형상이라. 세이킬로스가 죽지 않는 기억의 상징으로서 나를 이곳에 두노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악곡 아래에는 "세이킬로스, 에우테르(페)"라는 문구가 있어, 에우테르페가 음악의 여신을 의미할 수도 있고, 세이킬로스의 아내나 어머니를 가리킬 수도 있다. 이는 세이킬로스가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겪고, 삶에 대한 고뇌 끝에 창작한 노래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악보는 짧지만 완성된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세이킬로스의 비문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보존된 악보로, 고대 그리스의 기보법을 사용하여 기원후 1세기 또는 2세기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곡은 고대 그리스 음악 중에서 악보로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예시 중 하나다. 그리스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음악이 사용되었고, 그리스 문자를 이용한 기보법은 기원전 3~4세기경에 개발되었으나, 전문적인 작곡가나 연주자가 아닌 경우 악보를 익히기보다는 주로 귀로 곡을 익혔기 때문에 악보가 남아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고대 그리스 기보법을 사용한 곡으로는 기원전 128년에 작성된 델포이 찬가가 있으며, 이 곡은 델포이 신전의 돌에 새겨져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