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건]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Sampoong Department Store Collapse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7분경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삼풍백화점이 붕괴한 사고이다. 건물이 무너지면서 1,445명의 종업원과 고객들이 다치거나 사망했으며, 인근 삼풍아파트, 서울고등법원, 우면로 등으로 건물의 파편과 잔해, 먼지가 날아들어 주변을 지나던 행인 중에 부상자가 속출했다. 이 사고로 수많은 재산상 손해와 인명 손실이 발생했고, 사고 직후 119구조대, 경찰, 서울특별시, 대한민국 국군, 정부, 국회까지 나서 범국민적인 구호 및 사후처리가 이어졌다.

사망자는 502명, 부상자는 937명, 실종자는 6명이었으며, 피해액은 약 2,700여억원으로 추정된다. 생존자 중 최명석, 유지환, 박승현은 각각 11일, 13일, 17일 동안 갇혀 있다가 구조되었다. 삼풍백화점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주상복합 아파트인 아크로비스타와 한울빌딩이 2001년 착공되어 2004년에 완공되었다.

붕괴 원인

부지 용도

삼풍백화점의 부지 용도는 붕괴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건설 과정에서 비리가 매우 심각했음을 보여준다. 1989년, 삼풍 아파트가 완공된 후, 삼풍 건설은 그 앞에 남은 넓은 땅에 상가나 다른 건물을 짓고자 공사를 시작했으나, 무허가 공사로 제재를 받았다. 이유는 그 땅이 백화점을 지을 수 없는 아파트용 부지였기 때문이다. 결국 삼풍 그룹은 서초구청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제공하여 불법적으로 용도를 변경했다.

내부 구조 임의 변경

1987년 설계 당시 삼풍 백화점은 '삼풍 랜드'라는 명칭으로 서초동 삼풍 아파트 대단지의 종합 상가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건물이 거의 다 지어졌을 무렵, 삼풍건설산업의 회장 이준은 백화점으로 변경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건물의 구조가 상당히 바뀌었고, 구조 변경을 우려한 우성 건설은 이를 거부했지만, 이준 회장은 계약을 파기하고 구조 변경을 강행했다. 법률상 건물의 사용 용도에 따른 구조 변경은 반드시 구조 전문가의 검토를 받아야 했지만, 백화점 설계 당시 이를 무시하고 설계와 공사를 강행했다. 백화점은 준공 검사도 무시한 채 개점했다.

부실시공

삼풍백화점은 애초에 무량판 공법으로 설계된 건물이었다. 그러나 용도가 변경되면서 구조에 문제가 생겼다. 삼풍은 매장 공간을 넓히기 위해 상가 건물의 벽을 없앴다. 원래 벽과 기둥이 함께 하중을 지탱했으나, 벽이 사라지면서 기둥에만 하중이 분산되었다. 또한, 에스컬레이터를 만들기 위해 각층에 구멍을 뚫었고, 이로 인해 기둥이 버텨야 하는 무게가 더 커졌다. 기둥도 줄어들었으며, 일부 기둥은 아예 잘라버렸다. 이러한 구조 변경은 붕괴를 초래했다.

무리한 건축

백화점은 원래 4층까지만 설계되었으나, 불법적으로 5층으로 확장되었고, 그 5층의 용도도 변경되었다. 본래 키즈랜드로 계획되었던 5층은 나중에 식당가로 불법 변경되었고, 이로 인해 하중이 크게 증가했다. 식당가에는 무거운 콘크리트와 사업 제품들이 설치되었으며, 이로 인해 하중은 3배에서 4배 증가했다. 또한 4층에서는 매장 확장을 이유로 기둥을 없앴다. 이러한 무리한 시공이 건물 붕괴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냉각탑 설치

삼풍백화점의 옥상에 설치된 냉각탑은 원래 지하에 설치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하 공간 부족으로 냉각탑이 옥상으로 변경되었고, 이를 무리하게 설치하면서 하중이 급격히 증가했다. 냉각탑의 가동으로 건물에 진동이 발생하였고, 이는 건물 붕괴의 원인이 되었다.



붕괴 조짐

삼풍백화점은 붕괴 전부터 여러 차례 위험한 징조가 나타났다. 1993년부터 1995년까지 건물 내에서 균열이 발생했고, 1995년 4월 5층의 천장에서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5월에는 균열에서 모래가 떨어지기 시작했으며, 5층 바닥은 서서히 내려앉았다. 1995년 6월 29일, 붕괴 직전까지 건물의 침하 현상은 계속되었고, 일부 고객은 이를 감지하고 대피하기 시작했다.

붕괴

붕괴는 이미 예고된 일이었지만, 삼풍백화점의 경영진은 이를 무시하고 영업을 계속했다. 붕괴 직전까지 건물 내에서 진동과 균열이 발생했으며, 5시 57분에 붕괴가 시작되었다. 건물의 가장 약한 기둥이 무너지면서 붕괴가 시작되었고, 20초 만에 건물은 완전히 무너졌다. 이로 인해 1,500여 명의 사람들이 잔해 속에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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