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1월 괴담
매년 11월이 되면 연예계와 방송가에 유독 사건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는 도시전설과 같은 징크스가 있다. 마치 11월에 무슨 마가 끼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주로 사망, 결별, 범죄 연루 등 좋지 않은 소식들이 이 시기에 집중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 괴담이 본격적으로 대중 매체에 오르내리며 이슈가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인 2005년부터이다. 하지만 연예계 내부에서는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있었던 소문이라고 한다. 한 언론에서는 1968년 11월 10일 가수 차중락 씨의 뇌막염 사망을 그 시초로 꼽기도 한다.
특히 11월 괴담 확산에 불을 지핀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1986년 11월 1일 코미디언 서영춘 씨 사망, 1987년 11월 1일 유재하 씨 교통사고 사망, 그리고 정확히 3년 뒤인 1990년 11월 1일 김현식 씨 간경변 사망(봄여름가을겨울 멤버)이다.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이 괴담이 마치 정설처럼 자리 잡았고, 가십 매체들은 11월만 되면 어김없이 관련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물론 11월이 특별히 불길한 달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낭설일 뿐,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
이 도시전설의 이면에는 “11월에는 기삿거리가 없다”는 언론계의 속사정이 숨어 있다는 견해가 있다. 아무리 사람 사는 세상에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고 해도 신문에 실릴 만한 큰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특히 스포츠 분야는 매일같이 기삿거리를 만들어내지만, 11월에는 주요 기사였던 프로야구와 프로축구가 종료되어 안정적으로 지면을 채울 기사들이 사라진다. 이를 대체할 만한 농구나 배구 같은 종목은 분량이 턱없이 부족하며, 12월에는 연말 분위기로 쓸 거리가 많지만 11월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부족한 지면을 채우기 위해 11월에는 연예계 쪽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대중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 주로 연예인들의 치부를 공개하게 되었다는 분석이다. 즉, 흉흉한 사건이 11월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11월에 비로소 밝혀진다는 것이다.
일종의 음모론으로, 국정감사 등으로 정치권 인물들의 비리가 많이 드러나는 시기이므로 일부러 방송 편성 시에 연예계 사건들을 대대적으로 보도한다는 견해도 있다. 언론 매체의 시공간적 한정성과 게이트키퍼들의 조합이라는 점에서 언론학부 등에서 강의하기도 한다. 한국은 정경유착 및 정언유착이 심한 사회여서 정치 관련 비리를 덮기 위해 연예계에서 사건을 터트린다는 추측도 나온다.
한편 11월은 수(水)의 기운을 띠는 겨울이 시작되는 변화의 마디이며, 이는 화(火)의 기운을 띠는 연예인과 상극이기 때문에 연예인들 사이에서 사고가 많이 터진다는 음양오행에 입각한 역술적 분석도 존재한다.
결국 11월 괴담은 끼워 맞추기식 흥미 위주로 포장되면서 연예인이 저지른 범법 행위의 부도덕성과 사회적 의미, 파장, 경각심을 간과하게 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물론 경각심뿐만 아니라 바르고 성실하게 사는 연예인(특히 무명)에 대한 재조명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요즘에는 프로농구, 프로배구 등 겨울 스포츠 종목이나 E-스포츠, 해외 스포츠 등 가을에도 기삿거리가 많고, 연예인 명예훼손에 대한 고소 압박이 커지면서 스포츠 및 연예지의 기사 양식도 변화하여 인식이 달라졌다. 하지만 과거에는 매년 11월은 무조건 뭔가 터진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었다.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은 지금도 11월에 흉흉한 사건이 발생하면 쉽게 11월 괴담과 결부시키려 하기 때문에 이 징크스를 완전히 불식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