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건] 숭례문 방화 사건

Sungnyemun Arson Incident


 숭례문 방화 사건(崇禮門放火事件)은 2008년 2월 10일부터 2월 11일에 걸쳐 발생한 사건으로, 숭례문이 방화로 인해 전소된 사건이다. 방화범은 당시 69세의 채종기(경북 칠곡 출신)로 밝혀져 구속되었고, 그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화재는 2008년 2월 10일 오후 8시 40분경에 발생했다. 채종기는 시너를 부은 후 라이터로 불을 붙였고, 그 불은 숭례문 2층에서 발생하였다. 소방 당국은 신고를 받고 소방차 32대, 소방관 128명을 현장에 출동시켜 화재 진압에 총력을 기울였으나, 불은 빠르게 번져 2층 누각이 붕괴되었고, 이후 1층으로 번져 1시 54분경에는 건물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2층 문루의 90%, 1층 문루의 10%가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다.

화재 진압 중 숭례문에 걸려있던 현판도 소방관들에 의해 떼어내어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이 과정에서 현판이 손상되었다. 현판은 무거운 중량을 받쳐내지 못하고 떨어지면서 크고 작은 금이 가고 일부 파편이 유실되었다.

처음에는 전기시설의 누전 등으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보도되었으나, 2층에는 전기시설이 없고 1층의 전기시설도 정상 상태였던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후 숭례문 주변에서 목격된 50대 남성의 모습이 방화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화재는 방화로 추정되었다. 경찰은 현장에서 일회용 라이터 2개를 발견했으며, 수사를 진행한 결과 방화범으로 채종기를 지목했다.



채종기는 2006년 창경궁 방화 사건에 연루되었으며, 그 당시에도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그는 숭례문 방화에 대해 자신의 불만을 토로하며 범행을 인정했다. 이후 경찰은 그의 집에서 시너 1병, 사다리, 의류 등 증거를 발견하고 그를 체포하였다.

숭례문 화재로 인해 발생한 피해는 엄청났고, 복원에는 수년이 걸렸다. 복원 작업은 2~3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으며, 주요 부분들이 불에 타버렸기 때문에 원형 그대로 재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다행히 숭례문의 실측 도면이 2006년에 작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원형 복원은 가능했으나, 대형 금강 소나무의 확보와 건축 자재의 조사 등이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복원은 2013년 4월 29일에 마무리되었으며, 복원된 숭례문은 5월 4일에 시민들에게 공개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숭례문 화재에 대한 책임 논란이 일었다. 숭례문 개방을 추진한 서울시와 중구청에 대한 책임이 제기되었으며, 특히 경비 인력의 부족과 문화재 보험금이 부족한 점도 비판을 받았다. 화재 진압에 있어서 소방당국과 문화재청의 대응이 늦었다는 비난도 있었다. 문화재청은 화재 발생 직후, 진화에 집중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당시 서울시와 문화재청 간의 책임 소재와 대처가 혼란스러웠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었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숭례문 복원 비용을 국민 성금을 통해 모금하자는 제안을 했으나, 강제 모금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또한, 화재 진압에 필수적인 실측 도면이 화재 발생 2시간 후에 소방당국에 전달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초기 진화 과정에서의 문제점도 지적되었다.

결론적으로 숭례문 방화 사건은 단순한 화재가 아니라, 여러 가지 관리 미비와 책임 회피, 그리고 대응의 부실함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이를 통해 문화재 보호와 관리 시스템의 중요한 개선점이 필요함을 일깨운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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