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건] 12·12 군사 반란
1979년 12월 12일 밤, 대한민국은 격동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흔히 12.12 군사 반란 또는 12.12 숙군 쿠데타 로 불리는 이 사건은 전두환과 노태우 등을 중심으로 한 하나회 를 위시한 신군부 세력이 최규하 대통령의 승인 없이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을 비롯한 주요 군 수뇌부를 체포하며 권력을 장악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통해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대한민국의 실세로 급부상했고, 이듬해 5.17 쿠데타 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진압을 거쳐 제11대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된다. 사건의 배경: 10.26 이후의 혼란과 의혹 10.26 사건(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군 수뇌부는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을 중심으로 국가 안보를 위해 단결하기로 결의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합동수사본부장으로서 10.26 사건 수사를 진행했었다. 하지만 당시 정승화 총장이 10.26 사건 현장과 가까웠고, 범인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친분이 두터웠다는 점이 의혹을 낳았다. 일각에서는 정승화 총장이 박 대통령 암살 사건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심지어 파견 검사들은 정 총장에 대한 엄중 조사를 건의했지만, 전두환 본부장은 계엄사령관인 정 총장을 그렇게 할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1979년 11월 6일, 전두환은 10.26 사건 1차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김재규의 단독 범행이라고 발표했고, 정승화 총장의 신속한 조치를 칭찬하며 의혹을 불식시키려 했다. 그러나 이미 11월 1일 일본 언론에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군의 최고 실권자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돌았다. 12월 9일에는 국방장관이 정승화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동해경비사령관으로 전보시키는 건의를 받았으나, 수사 관련 의혹을 우려해 발령을 유보시키기도 했다. 전개 과정: 치밀한 계획과 무력 충돌 정승화 총장 제거 계획 :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11월 중순부터 정승화 총장을 제거하고 군부를 장악할 계획을 세웠다. 하나회 를 비롯한 동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