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건]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
1971년 1월 23일, 대한항공 포커 F27 여객기는 속초에서 김포로 향하던 중 하이재킹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승객 55명과 승무원 5명이 탑승한 이 비행기는 홍천 상공에서 폭탄을 들고 있던 납치범 김상태에게 제압당했다. 사건의 전개는 끔찍했으며, 조종실의 문이 부서지며 폭탄이 터지는 등 여러 차례의 위기를 맞았지만, 탑승자들의 기지와 용기 덕분에 모두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단순히 납치 사건을 넘어서, 당시 대한민국이 겪고 있던 국가적 긴장 상황과 함께 사람들의 희생정신을 드러낸 중요한 사건이기도 했다.
납치범 김상태는 폭탄을 들고 조종사들에게 비행기를 북한으로 돌리라고 요구했다. 이때, 조종사와 승무원들은 협박에 순응하는 척하며 비행기를 북쪽으로 돌리지만, 실제로는 공군의 긴급 출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한민국 공군의 F-5 전투기가 출격하면서 이 비행기는 제압의 순간을 맞이했다. 기내에서 승무원 최천일과 수습 조종사 전명세는 기지를 발휘해 승객들에게 납치범을 속이도록 요청했다. 이를 통해 비행기는 공군의 F-5와 조우할 수 있었고, 납치범 김상태는 그 순간을 틈타 제압되었다.
그러나 사건의 전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폭탄이 떨어지며 점화된 순간, 수습 조종사 전명세는 자신의 몸을 던져 폭탄을 막았다. 그는 몸으로 폭탄을 덮쳐 기내 폭발을 막았고, 이는 모두의 생명을 구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비록 전명세는 중상을 입고 결국 사망했지만, 그의 희생은 생존자들에게는 귀중한 생명을 안겨주었다. 만약 그가 몸으로 폭탄을 막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더 큰 참사로 이어졌을 것이다.
사건 후, 전명세 기장은 사후 기장으로 추서되었으며, 일등 보국훈장과 함께 조종사 정복을 수여받았다. 그의 시신은 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고, 그의 유언은 "탑승객이 다칠까봐 몸을 던졌다"는 간결한 말로 전해졌다. 이 사건은 이후 반공 교육에서 널리 활용되었고, 2024년에는 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하이재킹'이 개봉되며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사건은 단순한 납치 사건을 넘어, 그 당시의 정치적 긴장과 국가의 안보를 반영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납치범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 안전할 수 있었지만, 비행기와 승객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선택은 결국 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당시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절박한 선택이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전명세와 승무원들의 용기와 희생은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